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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에너지 안보 vs 탄소중립, 충돌은 불가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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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 안보 확보는 모두 현대 국가에게 필수 과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표는 때때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으로,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에너지 안보는 외부 충격 없이 안정적이고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아직까지는 간헐성, 저장 문제, 공급 안정성 부족 등으로 인해 에너지 안보의 해답이 되기에는 기술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국가들은 한편으로는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동시에 화석연료의 공급망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이중적 정책을 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vs 탄소중립, 충돌은 불가피한가?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유럽은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이후 갑작스럽게 석탄 발전을 재가동하고, LNG 수입처를 다변화하며 에너지 안보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움직임이었다. 또 다른 예는 한국과 일본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도 여전히 석유·가스 수입 다변화, 원자력 확대, 비상시 비축 계획 등을 강화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 이상적으로만 연결되지는 않으며, 실제 정책 집행 과정에서는 서로 우선순위를 두고 균형을 조정해야 하는 현실적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단기간의 에너지 가격 급등이나 공급 차질은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은 정말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탄소중립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광과 풍력은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공급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재생에너지에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마이크로그리드,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결합하면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고, 지역 단위 에너지 자립도 실현 가능하다. 수소, 전고체 배터리, 원전의 새로운 형태인 SMR(소형모듈형원자로) 등도 기술 진보를 통해 ‘친환경’과 ‘안정 공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즉, 단기적으로는 충돌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술·정책·인프라의 발전을 통해 탄소중립이 곧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양자택일이 아닌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세우되, 에너지 가격 급등이나 공급 차질 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연한 대응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기업은 친환경 기술 개발과 함께,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투자와 전환 비용 분산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시민 역시 단순히 ‘환경 보호’만이 아닌 에너지 소비 구조의 변화를 함께 수용해야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은 결국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두 개의 축이다. 이 둘이 충돌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과 기술의 몫이며, 그 균형을 잡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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